창녕 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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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9 00:00
향토문화유적명 relicsNm | 창녕 오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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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지정번호 appnNo | 창녕군 향토유적 제34호 |
향토문화유적구분 relicsKnd | 유형문화유적 |
향토문화유적종류 relicsSe | 건조물 |
소재지도로명주소 rdnmadr | |
소재지지번주소 lnmadr |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시남리 815 |
위도 latitude | 35.470835 |
경도 longitude | 128.416743 |
지정일자 appnDate | 1997-12-20 |
소유주체구분 posesnSe | 국유 |
소유자명 ownerNm | 양호흥 |
규모 scale | 1동 |
조성시대 makePd | 조선 |
이미지정보 picInfo | |
향토문화유적소개 relicsIntrcn | 창녕 오여정은 창녕군 남지읍 시남리에서 낙동강 건너의 의령군 낙서면과 통하는 옛 이이목나루터의 서편 절벽에 세워진 재실이다. 어촌漁村 양훤楊 (1597~1650)은 조선 중기의 문신 문간공文簡公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의 제자이었으며, 광해군 때 스승이 귀향을 가자 이곳 오항烏項으로 낙향하여 오여정을 짓고 유학자들과 교류하였다. 오여정이라는 이름은 『논어論語』의 글귀에서 유래되었다. 『논어』선진(先進)의 25장에 이르러서 공자는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 4명의 제자들에게 각자 세상에 나아가서 본인들이 펼치고자 하는 포부에 대해 묻는다. 이 중 가장 늦게 대답한 증석은 ’봄이 오면 입던 옷을 봄옷으로 바꿔 입고 어른 5~6명, 그리고 아이 6~7명과 함께 기(沂)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쐰 다음 노래 부르며 돌아오고 싶습니다’라는 대답을 하였다. 증석의 이야기에 답변으로서 공자는 ’오여점야(吾與點也)’라고 맞장구친다. 오여정은 어지러운 세상의 시시비비에 관여치 않고 사대부로서 학문에 정진하며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지키고자 한 양훤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당호로 생각된다. 오여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집의 정자이다. 오여정은 창방과 처마도리 받침과 장혀 사이에 소로를 끼운 소로수장집으로 격식을 갖춘 건물로 보인다. 정면 4칸 중 좌측면의 1칸은 다른 칸의 바닥에 비해 한 단 정도 올려 누마루를 구성하였고, 나머지 3칸은 전퇴를 두고 방을 구성하였다. 누마루에는 우물마루를 두고 평난간을 둘렀으며, 방에서 한 짝의창살문이 누마루로 내어져 있다. 우측의 협칸에서 측면 2칸에 쪽마루를 두었다. |
관리기관전화번호 phoneNumber | 031-770-3280 |
관리기관명 institutionNm | 양용준 |
데이터기준일자 referenceDate | 2022-01-09 |
ctprvnNm | 경상남도 |
sigunguNm | 창녕군 |
sido | 38 |
sigungu | 38330 |
upmyundo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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