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상세동산신도

한국무속신앙사전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세동리 상세동[마을](/topic/마을) 산제당에 [봉안](/topic/봉안)해 온 산신도. 2009년 1월 20일‘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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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세동리 상세동[마을](/topic/마을) 산제당에 [봉안](/topic/봉안)해 온 산신도. 2009년 1월 20일‘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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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덕
정의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세동리 상세동[마을](/topic/마을) 산제당에 [봉안](/topic/봉안)해 온 산신도. 2009년 1월 20일‘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정의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세동리 상세동[마을](/topic/마을) 산제당에 [봉안](/topic/봉안)해 온 산신도. 2009년 1월 20일‘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내용상세동산신도는 가로 98.5㎝×세로 94㎝ 크기의 견본채색화(絹本彩色畵)이다. 보존 상태는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나 화기가 있는 하단과 상단의 일부는 구멍이 나고 채색이 떨어져 나가는 등 상태가 좋지 않다.

화면은 중앙에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을 위치시키고 주위에 남녀 두 동자와 배경으로 노송과 기암괴석, 폭포를 그려 넣은 19세기 후반 산신도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호랑이가 산신을 보좌하듯 나란히 밀착하여 앉아 있는 협시형(挾侍形)은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산신도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유형이다. 색감은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으로, [황토](/topic/황토)색과 적색을 주색으로 하고 녹색·흰색이 보조색으로 사용되었다. 산신의 얼굴은 근엄하면서도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가슴께에 이르는 길고 검은 수염을 늘어트리고 있다. 머리에는 [두건](/topic/두건)을 썼고, 금색의 둥근 문양이 찍힌 붉은색의 [도포](/topic/도포)를 걸치고 있으며, 왼손에는 단선(團扇)을 들고 있다. 단선 아래에는 남녀 두 동자가 산신을 시위하고 있는데, 여아는 쟁반에 해태를 받쳐 들고 있고, 남아는 어깨 너머로 [망태기](/topic/망태기)를 들고 있다. 산신의 허리를 감싸듯 앉아 있는 호랑이는 [민화](/topic/민화)풍의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뒤쪽으로는 선계를 상징하는 듯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와 기암절벽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배경을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구도가 잘 짜여 있으며, 산신의 수염과 두건, 호랑이와 해태의 세밀한 표현이 돋보인다.

상세동산신도는 뛰어난 작품성 외에도 조성 내력을 기록해 놓은 화기가 있어 제작 연도와 제작자, [봉안](/topic/봉안)장소 등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화기에 따르면 산신도는 성상(聖上) 즉위 33년 병신(丙申) 3월 마곡사 심검당(尋劍堂)에서 조성하여 태화산 상세동으로 이안(移安)한 것이다. 여기서 성상(聖上)은 고종황제를 일컫는 것으로, 제작 연도는 고종이 즉위한 지 33년이 되는 1896년이다. 1896년은 산제당을 건립하고 산향계를 결성한 해이기도 하다. 산신도 제작에는 마곡사에서 불화를 담당하던 화사집단이 참여하였다. 금어비구(金魚比丘)는 금호당(錦湖堂) 약효(若效)이고, 증명비구(證明比丘)는 월선당(月船堂) 월택(月澤), 송주비구(誦呪比丘)는 입승(立繩), 지전비구(持殿比丘)는 대협(大俠), 홍가비구(洪可比丘)는 덕문(德文)이다. [화주](/topic/화주)(化主)는 감찰(監察) 신양선(申良善)이다. 화기의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聖上卽祚三十三年丙申三月
公州麻谷寺尋劍堂造成
山神幀移安于細洞泰華山
證明比丘 月船堂 月澤
誦呪比丘 立繩
持殿比丘 大俠
金魚比丘 錦湖堂 若效
洪可比丘 德文
化主 監察 申良善

금호당 약효는 마곡사에서 활동한 유명한 불모(佛母)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충청도 지역에서 다수의 불화와 산신도를 제작하였다. 그의 작품은 마곡사를 비롯해 갑사·동학사·신원사 등 마곡사의 본·말사에 30여 점이 남아 있다. 산신도로는 1909년 5월에 제작한 충북 보은 문수암 ‘복천산신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8호)’가 있다. 복천산신도는 전체적인 구도와 색감, 산신의 모습 등에서 상세동 산신도와 유사하다.

상세동산신도는 2009년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된 이후에는 보존과 관리상의 문제로 산신도와 산향계 문서 일체를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관하고 있다.
내용상세동산신도는 가로 98.5㎝×세로 94㎝ 크기의 견본채색화(絹本彩色畵)이다. 보존 상태는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나 화기가 있는 하단과 상단의 일부는 구멍이 나고 채색이 떨어져 나가는 등 상태가 좋지 않다.

화면은 중앙에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을 위치시키고 주위에 남녀 두 동자와 배경으로 노송과 기암괴석, 폭포를 그려 넣은 19세기 후반 산신도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호랑이가 산신을 보좌하듯 나란히 밀착하여 앉아 있는 협시형(挾侍形)은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산신도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유형이다. 색감은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으로, [황토](/topic/황토)색과 적색을 주색으로 하고 녹색·흰색이 보조색으로 사용되었다. 산신의 얼굴은 근엄하면서도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가슴께에 이르는 길고 검은 수염을 늘어트리고 있다. 머리에는 [두건](/topic/두건)을 썼고, 금색의 둥근 문양이 찍힌 붉은색의 [도포](/topic/도포)를 걸치고 있으며, 왼손에는 단선(團扇)을 들고 있다. 단선 아래에는 남녀 두 동자가 산신을 시위하고 있는데, 여아는 쟁반에 해태를 받쳐 들고 있고, 남아는 어깨 너머로 [망태기](/topic/망태기)를 들고 있다. 산신의 허리를 감싸듯 앉아 있는 호랑이는 [민화](/topic/민화)풍의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뒤쪽으로는 선계를 상징하는 듯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와 기암절벽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배경을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구도가 잘 짜여 있으며, 산신의 수염과 두건, 호랑이와 해태의 세밀한 표현이 돋보인다.

상세동산신도는 뛰어난 작품성 외에도 조성 내력을 기록해 놓은 화기가 있어 제작 연도와 제작자, [봉안](/topic/봉안)장소 등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화기에 따르면 산신도는 성상(聖上) 즉위 33년 병신(丙申) 3월 마곡사 심검당(尋劍堂)에서 조성하여 태화산 상세동으로 이안(移安)한 것이다. 여기서 성상(聖上)은 고종황제를 일컫는 것으로, 제작 연도는 고종이 즉위한 지 33년이 되는 1896년이다. 1896년은 산제당을 건립하고 산향계를 결성한 해이기도 하다. 산신도 제작에는 마곡사에서 불화를 담당하던 화사집단이 참여하였다. 금어비구(金魚比丘)는 금호당(錦湖堂) 약효(若效)이고, 증명비구(證明比丘)는 월선당(月船堂) 월택(月澤), 송주비구(誦呪比丘)는 입승(立繩), 지전비구(持殿比丘)는 대협(大俠), 홍가비구(洪可比丘)는 덕문(德文)이다. [화주](/topic/화주)(化主)는 감찰(監察) 신양선(申良善)이다. 화기의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聖上卽祚三十三年丙申三月
公州麻谷寺尋劍堂造成
山神幀移安于細洞泰華山
證明比丘 月船堂 月澤
誦呪比丘 立繩
持殿比丘 大俠
金魚比丘 錦湖堂 若效
洪可比丘 德文
化主 監察 申良善

금호당 약효는 마곡사에서 활동한 유명한 불모(佛母)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충청도 지역에서 다수의 불화와 산신도를 제작하였다. 그의 작품은 마곡사를 비롯해 갑사·동학사·신원사 등 마곡사의 본·말사에 30여 점이 남아 있다. 산신도로는 1909년 5월에 제작한 충북 보은 문수암 ‘복천산신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8호)’가 있다. 복천산신도는 전체적인 구도와 색감, 산신의 모습 등에서 상세동 산신도와 유사하다.

상세동산신도는 2009년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된 이후에는 보존과 관리상의 문제로 산신도와 산향계 문서 일체를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관하고 있다.
역사세동리(細洞里)는 마곡사(麻谷寺) 인근의 산골[마을](/topic/마을)로, 구전에 따르면 이 마을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산신제를 지내 왔다고 한다. 19세기 후반까지는 현 산제당 부근의 바위 밑에서 제사를 지내 오다가 산제당을 짓고 산신도(山神圖)를 [봉안](/topic/봉안)한 것은 1896년(丙申)의 일이다. 당시 마을에서는 산신제와 산제당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특별히 ‘산향계(山饗稧)’를 조직해서 운영해 왔는데, 관련 문서들이 비교적 잘 남아있어 산신제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산신도를 봉안하던 1896년 3월의『 산향계좌목(山饗稧座目)』(丙申三月)과「 축원문(祝願文)」(丙申三月)에는 계의 결성 목적과 운영 규정, 계원 명단, 이들의 기원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이 좌목의 계원 명단과 축원문의 축원자 명단에서 공히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신양선(申良善)으로, 그는 상세동산신도의 화기(畵記)에서도 [화주](/topic/화주)(化主)로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산제당 건립과 산신도의 제작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상세동에서는 봄·가을로 두 차례 산신제를 지내는데, 대개 음력으로 정월[春]과 시월[秋]의 초하루에서 초사흘 사이에 날을 받아서 지낸다. 현재까지 산신제의 명맥은 이어져 오고 있으나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2~3명에 불과할 정도로 크게 위축되어 있다. 산신제의 기반이 되었던 산향계도 1990년대 이후에는 그 기능을 상실한 채 유명무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
역사세동리(細洞里)는 마곡사(麻谷寺) 인근의 산골[마을](/topic/마을)로, 구전에 따르면 이 마을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산신제를 지내 왔다고 한다. 19세기 후반까지는 현 산제당 부근의 바위 밑에서 제사를 지내 오다가 산제당을 짓고 산신도(山神圖)를 [봉안](/topic/봉안)한 것은 1896년(丙申)의 일이다. 당시 마을에서는 산신제와 산제당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특별히 ‘산향계(山饗稧)’를 조직해서 운영해 왔는데, 관련 문서들이 비교적 잘 남아있어 산신제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산신도를 봉안하던 1896년 3월의『 산향계좌목(山饗稧座目)』(丙申三月)과「 축원문(祝願文)」(丙申三月)에는 계의 결성 목적과 운영 규정, 계원 명단, 이들의 기원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이 좌목의 계원 명단과 축원문의 축원자 명단에서 공히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신양선(申良善)으로, 그는 상세동산신도의 화기(畵記)에서도 [화주](/topic/화주)(化主)로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산제당 건립과 산신도의 제작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상세동에서는 봄·가을로 두 차례 산신제를 지내는데, 대개 음력으로 정월[春]과 시월[秋]의 초하루에서 초사흘 사이에 날을 받아서 지낸다. 현재까지 산신제의 명맥은 이어져 오고 있으나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2~3명에 불과할 정도로 크게 위축되어 있다. 산신제의 기반이 되었던 산향계도 1990년대 이후에는 그 기능을 상실한 채 유명무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의의상세동산신도는 19세기에 제작된 산신도 중에 화기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작품으로, 작품성과 함께 시대적 특징도 잘 반영하고 있는 등 산신도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아직까지 상세동에서는 산신제가 지속되고 있고, 산신도 제작 당시에 결성한 산향계 자료도 잘 남아 있어 다양한 측면에서 산신신앙을 연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참고문헌공주의 전통[마을](/topic/마을) 5 (공주문화원, 2006)
공주 상세동 산신도와 산향계 문서 (유병덕, 향토연구 33, 충남향토연구회, 2009)
공주 태화산 산향계(山饗契)의 성격과 산신제 (강성복·박종익, 민속학연구51, 국립민속박물관, 2010)
의의상세동산신도는 19세기에 제작된 산신도 중에 화기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작품으로, 작품성과 함께 시대적 특징도 잘 반영하고 있는 등 산신도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아직까지 상세동에서는 산신제가 지속되고 있고, 산신도 제작 당시에 결성한 산향계 자료도 잘 남아 있어 다양한 측면에서 산신신앙을 연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참고문헌공주의 전통[마을](/topic/마을) 5 (공주문화원, 2006)
공주 상세동 산신도와 산향계 문서 (유병덕, 향토연구 33, 충남향토연구회, 2009)
공주 태화산 산향계(山饗契)의 성격과 산신제 (강성복·박종익, 민속학연구51, 국립민속박물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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