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원오류마을당산제

한국무속신앙사전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원오류[마을](/topic/마을)에서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여성들이 주동이 되어 행하는 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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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원오류[마을](/topic/마을)에서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여성들이 주동이 되어 행하는 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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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덕
정의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원오류[마을](/topic/마을)에서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여성들이 주동이 되어 행하는 동제.
정의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원오류[마을](/topic/마을)에서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여성들이 주동이 되어 행하는 동제.
의의원오류[마을](/topic/마을) 당산제의 특징인 여성들의 속곳과 금속성 도구들이 내는 쇳소리는 강한 주술성을 통한 액막이 수단이다. 당산제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마을에 화재를 일으키는 도깨비를 물리치는 것이라는 점을 보면 원오류마을 당산제는 [도깨비제](/topic/도깨비제)와 같은 계통의 제의라고 할 수 있다. 원오류마을 당산제와 같이 여성들이 주도하는 당산제는 일상에서 쌓인 감정을 해소하고 금지된 집단신명을 발산할 기회를 여자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여성축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전라북도 [마을](/topic/마을)지킴이․정악 (전라북도, 2004)
호남지역 여성주재형 마을굿의 상징성과 축제성 (김월덕, 한국민속학 46, 한국민속학회, 2007)
의의원오류[마을](/topic/마을) 당산제의 특징인 여성들의 속곳과 금속성 도구들이 내는 쇳소리는 강한 주술성을 통한 액막이 수단이다. 당산제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마을에 화재를 일으키는 도깨비를 물리치는 것이라는 점을 보면 원오류마을 당산제는 [도깨비제](/topic/도깨비제)와 같은 계통의 제의라고 할 수 있다. 원오류마을 당산제와 같이 여성들이 주도하는 당산제는 일상에서 쌓인 감정을 해소하고 금지된 집단신명을 발산할 기회를 여자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여성축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전라북도 [마을](/topic/마을)지킴이․정악 (전라북도, 2004)
호남지역 여성주재형 마을굿의 상징성과 축제성 (김월덕, 한국민속학 46, 한국민속학회, 2007)
유래원오류[마을](/topic/마을)에는 당산제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마을에 살던 양반집 처자와 상민 출신 총각이 서로 좋아했으나 신분상의 차이로 혼인을 하지 못했다. 이를 비관하던 총각이 상사병에 걸려 죽자 처녀도 병을 얻어 뒤따라 죽었다. 그 뒤로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거듭 일어났고, 마을 사람들은 죽은 총각의 원혼(일부는 처녀의 원혼이라고도 함)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 속곳춤을 추고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마을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자 그 원인이 도깨비이므로 도깨비를 물리치기 위해 여자들이 나서서 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용 및 특징원오류[마을](/topic/마을)는 6․25전쟁 전에는 120여 가구에 이르는 제법 큰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절반 이하로 줄어 50여 가구가 되었으며, 이들 대부분이 [농업](/topic/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마을이다. 원오류마을 당산제는 197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계속 일어나자 부녀회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1985년부터 다시 지내기 시작했다. 원오류마을 당산제는 부녀회를 중심으로 마을 여성들이 주도하며, 남자들은 직접 나서지 않는다. 6․25전쟁 이전에는 남자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그러나 1985년에 당산제를 다시 지내기 시작하면서 일부 남자들의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원오류마을 당산제는 음력 이월 초하룻날에 마을 앞 냇가 버드나무가 늘어선 곳에 있는 당산나무 앞에서 지낸다. 신격은 당산할머니로 여겨진다. 과거에는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상고(喪故)나 출산이 없는 깨끗한 집을 제물 장만할 집으로 미리 정해 놓았지만 지금은 마을회관에서 함께 제물을 준비하기 때문에 미리 정해 둘 필요가 없다. 당산제 당일 아침이 되면 부녀자들은 당산나무 주위에 [금줄](/topic/금줄)을 치고, 깨끗한 집을 다니면서 쌀, 팥, [메밀](/topic/메밀) 등 [곡물](/topic/곡물)이나 돈을 걷는다. 추렴한 돈으로 제주와 몇 사람은 장에 가서 제물을 구입한다. 제물은 [시루떡](/topic/시루떡), 서너 [가지](/topic/가지) 나물, [삼실과](/topic/삼실과), 북어, [메밀묵](/topic/메밀묵), [오곡](/topic/오곡)메 등이다. 본래 원오류마을 당산제에서 차리는 제물과 음식은 매우 소박했다. 그러다가 근래에는 마을을 찾는 외부 방문객도 많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보조금도 여유가 있어 제물 외에 많은 음식을 차린다.

현재의 원오류마을 당산제는 1990년쯤부터 조금씩 변화하면서 이루어진 형태이다. 제보자들에 따르면 1985년 당산제 복원 이전에는 해가 질 녘부터 밤 사이에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해가 지면 마을 부녀자들은 속곳을 거꾸로 뒤집어쓴 채 풍물이나 세숫대야, 냄비 등 요란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금속성 생활도구들을 들고 나와 두드리고 춤을 추면서 마을을 세 바퀴 돌았다고 한다. 현재 속곳춤은 계속 하고 있지만 밤중에 하지는 않고, 쇳소리 내기는 아예 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원오류마을 당산제가 폐쇄적인 당산제에서 개방적인 마을축제로 변하면서 해가 질 무렵에 당산제를 끝마친다. 제의 마지막에는 사방을 향해 계속 절을 하면서 소지를 올리고, 제물 일부와 메밀묵 등을 사방에 뿌려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풀어먹인다. 이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당산제가 끝나면 일행은 굿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마을로 돌아온다. 예전에는 남은 제물을 마을로 들고 와서 어느 한 집에 모여 놀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마을회관에 모여 [뒤풀이](/topic/뒤풀이)를 한다. 마을회관에서는 노인들을 비롯해 주민 남녀노소가 모두 모여서 미리 준비한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밤늦도록 어울려 논다.
유래원오류[마을](/topic/마을)에는 당산제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마을에 살던 양반집 처자와 상민 출신 총각이 서로 좋아했으나 신분상의 차이로 혼인을 하지 못했다. 이를 비관하던 총각이 상사병에 걸려 죽자 처녀도 병을 얻어 뒤따라 죽었다. 그 뒤로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거듭 일어났고, 마을 사람들은 죽은 총각의 원혼(일부는 처녀의 원혼이라고도 함)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 속곳춤을 추고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마을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자 그 원인이 도깨비이므로 도깨비를 물리치기 위해 여자들이 나서서 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용 및 특징원오류[마을](/topic/마을)는 6․25전쟁 전에는 120여 가구에 이르는 제법 큰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절반 이하로 줄어 50여 가구가 되었으며, 이들 대부분이 [농업](/topic/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마을이다. 원오류마을 당산제는 197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계속 일어나자 부녀회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1985년부터 다시 지내기 시작했다. 원오류마을 당산제는 부녀회를 중심으로 마을 여성들이 주도하며, 남자들은 직접 나서지 않는다. 6․25전쟁 이전에는 남자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그러나 1985년에 당산제를 다시 지내기 시작하면서 일부 남자들의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원오류마을 당산제는 음력 이월 초하룻날에 마을 앞 냇가 버드나무가 늘어선 곳에 있는 당산나무 앞에서 지낸다. 신격은 당산할머니로 여겨진다. 과거에는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상고(喪故)나 출산이 없는 깨끗한 집을 제물 장만할 집으로 미리 정해 놓았지만 지금은 마을회관에서 함께 제물을 준비하기 때문에 미리 정해 둘 필요가 없다. 당산제 당일 아침이 되면 부녀자들은 당산나무 주위에 [금줄](/topic/금줄)을 치고, 깨끗한 집을 다니면서 쌀, 팥, [메밀](/topic/메밀) 등 [곡물](/topic/곡물)이나 돈을 걷는다. 추렴한 돈으로 제주와 몇 사람은 장에 가서 제물을 구입한다. 제물은 [시루떡](/topic/시루떡), 서너 [가지](/topic/가지) 나물, [삼실과](/topic/삼실과), 북어, [메밀묵](/topic/메밀묵), [오곡](/topic/오곡)메 등이다. 본래 원오류마을 당산제에서 차리는 제물과 음식은 매우 소박했다. 그러다가 근래에는 마을을 찾는 외부 방문객도 많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보조금도 여유가 있어 제물 외에 많은 음식을 차린다.

현재의 원오류마을 당산제는 1990년쯤부터 조금씩 변화하면서 이루어진 형태이다. 제보자들에 따르면 1985년 당산제 복원 이전에는 해가 질 녘부터 밤 사이에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해가 지면 마을 부녀자들은 속곳을 거꾸로 뒤집어쓴 채 풍물이나 세숫대야, 냄비 등 요란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금속성 생활도구들을 들고 나와 두드리고 춤을 추면서 마을을 세 바퀴 돌았다고 한다. 현재 속곳춤은 계속 하고 있지만 밤중에 하지는 않고, 쇳소리 내기는 아예 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원오류마을 당산제가 폐쇄적인 당산제에서 개방적인 마을축제로 변하면서 해가 질 무렵에 당산제를 끝마친다. 제의 마지막에는 사방을 향해 계속 절을 하면서 소지를 올리고, 제물 일부와 메밀묵 등을 사방에 뿌려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풀어먹인다. 이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당산제가 끝나면 일행은 굿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마을로 돌아온다. 예전에는 남은 제물을 마을로 들고 와서 어느 한 집에 모여 놀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마을회관에 모여 [뒤풀이](/topic/뒤풀이)를 한다. 마을회관에서는 노인들을 비롯해 주민 남녀노소가 모두 모여서 미리 준비한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밤늦도록 어울려 논다.
문화재관리국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제14책-무의식편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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