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편

한국무속신앙사전
고려 명종때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이웃에 사는 늙은 무당이 나라에서 내린 금령(禁令)으로 개경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고 지은 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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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명종때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이웃에 사는 늙은 무당이 나라에서 내린 금령(禁令)으로 개경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고 지은 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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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고려 명종때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이웃에 사는 늙은 무당이 나라에서 내린 금령(禁令)으로 개경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고 지은 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려 있다.
내용이규보는 「노무편(老巫篇)」 병서(幷序)에서 “동쪽 이웃에 늙은 무당이 살았는데 음란한 노래와 괴상한 말들이 들려 괴로워하던 차에 나라에서 명을 내려 모든 무당들로 하여금 멀리 옮겨가 서울에 인접하지 못하게 하자 이를 기뻐하여 시를 지었다”라고 시를 지은 배경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이 시는 고율시(古律詩)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여자무당과 남자무당을 각각 무당[巫]과 [박수](/topic/박수)[覡]로 구분하였고 굿의 연행과 관련된 부분이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목구멍 속의 새소리 같은 가는 말로 늦을락 빠를락 두서없이 지껄이다가 천 마디 만 마디 중 요행 하나만 맞으면 [어리](/topic/어리)석은 남녀가 더욱 공경히 받드니 ••• 몸을 추켜 펄쩍 뛰면 머리가 들보에 닿는다(喉中細語如鳥聲 口門哰無緖緩復急 千言萬語幸一中 騃女癡男益敬奉…起躍騰身頭觸棟)”라는 구절에서는 무당의 공수를 듣고 이를 받드는 모습과 격렬히 뛰면서 도무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나무 얽어 다섯 자 남짓한 [감실](/topic/감실)을 만들어 입버릇 삼아 스스로 제석천이라 말하지만(緣木爲龕僅五尺 信口自道天帝釋)”이라는 부분에서는 굿당과 제석거리를 거행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온 벽에다 붉고 푸른 귀신 형상을 그리고 칠원성군(七元星君)과 구요성(九曜星)을 액자에 그려 붙였지만 성관은 본래 먼 하늘에 있거늘 어찌 너를 따라 네 벽에 붙여 있을 것이며(丹靑滿壁畫神像 七元九曜以標額 星官本在九霄中 安能從汝居汝壁)”라는 구절을 통해서는 칠원성군(七元星君)과 구요성(九曜星)을 그린 무신도를 걸어놓았음을 알 수 있다. 또 “북소리와 동이를 두들기는 시끄러운 소리 내 귀에 들리지 않으리(瓦鼓喧聲無我耳)”라고 표현함으로써 굿에 쓰이는 악기로 볼 수 있는 와고(瓦鼓)와 물동이[喧]를 언급하고 있다. 요즘 장구의 몸통은 보통 오동나무로 만들지만 예전에는 사기나 [기와](/topic/기와) 등으로도 만들었다고 한다.

이규보는 「노무편」에서 신이 내려서 신통의 힘으로 점을 치고 예언하는 모습, 신당을 꾸미고 성관(星官)•칠성의 무신도(巫神圖)를 그려서 걸어 둔 모습, 굿을 할 때 격렬히 뛰면서 춤추는 모습 등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무당의 의식에 관한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서 미신이 성행한 당시의 미신 타파를 역설하였다. 그는 어려운 민중의 의식을 괴요(怪夭)한 말로 현혹시켜 수탈하는 무격행사의 타락상을 비판하였으며 무속을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미신으로 보고 선비들에게 이를 가까이하지 않도록 경고하였다. 시의 내용 중에서 무당이 제석과 칠성 등을 모시고 있는 점으로 보아 당시 무속이 불교 및 도교 또는 자연신앙과 혼합된 양상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무편」은 무속에 관한 옛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무속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특히 이 시를 통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12세기경 고려시대의 무속이 현존하는 중부•황해도 지역의 무속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무신도를 걸어 놓은 굿당, 제석거리에서 무당이 공수를 주고 [단골](/topic/단골)들이 술을 마시는 모습, 뛰고 솟구치는 무당의 도무, 타악기 반주 등은 황해도굿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 자료를 통해 신이 내린 무당인 강신무(降神巫)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다. 강신무의 존재는 삼국시대 이래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이규보의 「노무편」을 통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으며 오늘날과 같은 무당의 기능과 굿의 형식이 고려시대 이전에 형성되어 고려시대에는 정형화되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참고문헌東國李相國集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 (유동식,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5)
무속의 세계 (최길성, 정음사, 1984)
이규보문학연구 (김진영, 집문당, 1984)
고려 무속신앙의 전개와 그 내용 (박호원, 민속학연구 창간호, 국립민속박물관, 1994)
황해도 [무악](/topic/무악)의 역사성 (이용식, 한국무속학 16, 한국무속학회, 2008)
高丽明宗年间,李奎报(1168~1241)目睹一位邻居老巫因国家颁布的禁令被逐出首都开京有感而作的诗。现收录于《东国李相国集》。

李奎报在《老巫篇》序言中阐明了写诗背景:“家东侧住着一位老巫,唱着淫荡的歌,说着怪诞的话,很是让人烦,国家颁布法令驱逐所有巫师,不得接近开京,为庆此事而作诗。”

分析诗的内容可知,李奎报将男女巫区分为“巫”和“觋”,并描述了[巫祭](/topic/巫祭)的表现形式。具体包括巫师[降神](/topic/降神),借用神力占卜预言的情景;装点神堂,悬挂星官,[七星](/topic/七星)等巫神图的情景;举行巫祭时激烈跳舞的情景等。另外,通过对巫祭的事实描写,强调应该破除当时盛行的迷信。此外,从诗中还可了解到,当时的巫俗呈现出与佛教,道教及自然信仰相混合的形态。

透过此诗还可推测,十二世纪高丽时代的巫俗与现在中部及黄海道地区的巫俗十分相似,可知现今巫师的作用和巫祭的形式在高丽时代前成型,并于高丽时代定型。
“Nomupyeon (Old Shaman)” is a poem by Yi Gyubo (1168-1241), written after the author witnessed an old shaman who was a neighbor of his being expelled from the capital Gaegyeong after King Myeongjong of Goryeo Dynasty ordered a ban on shamanic practice. The poem was published as part of Donggukisanggukjip (Collected Works of Minister Yi of the Eastern Kingdom).

In an introduction to the poem, Yi writes, “an old shaman lived in the eastern part of my neighborhood and I had been distressed by strange singing and words when the state sent down orders that all shamans move far away from the capital, which pleased me greatly and led me to write this poem.” The poem categorizes shamans into the female shaman mudang (巫) and the male shaman baksu (覡) and provides detailed descriptions of ritual procedures: of the shaman making prophecies and performing divinations in a state of trance; of decorating the shrine and hanging shamanic paintings of constellations and [[Chilseong](/topic/SevenStars)](/topic/Chilseong) (Seven Stars); of the shaman dancing in ecstasy. By offering realistic depictions of the shamanic ritual, Yi stressed the need to overcome the superstitious practices that were widespread in his time.

The poem provides evidence that shamanic practice in Goryeo was a hybrid of Buddhist, Taoist and also nature worship practices. It also shows that the shamanic practice we see today was established prior to Goryeo, and that the 12thcentury practices share many similarities with those observed today in the central regions and Hwanghae Province.
“Nomupyeon” es un poema de Yi Gyu-bo (1168-1241) que fue escrito después de que el propio autor había sido testigo de su vecino que era un viejo chaman y fue expulsado de la capital Gaegyeong por la prohibición de prácticas chamánicas ordenada por el rey Myeongjong del reino Goryeo. El poema fue publicado como parte de 《Donggukisanggukjip》.

En la introducción a la poesía, Yi escribió lo siguiente: “un viejo chamán vivía en la parte este de mi barrio y me había sentido muy estresado por un vecino que solía cantar y pronunciar palabras indecentes. Pero justamente el Estado ordenó que todos los chamanes se alejaran lo más posible de la capital, lo que me complació mucho y me llevó a escribir este poema”.

El poema categoriza a los chamanes en los femeninos llamados mudang (巫) y los masculinos llamados baksu (覡), además proporciona descripciones detalladas de los procedimientos de un ritual: procedimiento de hacer profecías y adivinaciones en un estado de trance; procedimiento de decorar el santuario y colgar pinturas chamánicas de la divinidad de la constelación y la deidad de las siete estrellas llamadas [[Chilseong](/topic/SieteEstrellas)](/topic/Chilseong); procedimiento de bailar en estado de éxtasis. Al ofrecer descripciones realistas del ritual chamánico, Yi destacó la necesidad de superar tales prácticas supersticiosas que estaban extendidas ampliamente en su tiempo. El poema provee evidencia de que la práctica chamánica en el reino Goryeo era una mezcla del budismo, taoísmo y el culto a la naturaleza. También demuestra que la práctica chamánica que vemos hoy en día se estableció antes del período de Goryeo, y que las prácticas del siglo XII comparten muchas similitudes con las que tienen lugar en la actualidad en las regiones centrales y el provincia de Hwanghae-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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