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갈매동도당굿

한국무속신앙사전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에서 전승되고 있는 [마을](/topic/마을)제의. 현지에서는 ‘갈매동 [산치성](/topic/산치성) 도당굿’이라고 한다. 이 굿은 1995년 8월 7일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1995년 문화재 지정 당시 ‘갈내동도당굿보존회’가 기능보[유자](/topic/유자)로 지정되었다. 이후 1998년 9월 11일 [조순자](/topic/조순자)(趙順子)와 [허용업](/topic/허용업)(許龍業)이 각각 무녀당주(巫女堂主)와 잽이당주로서 예능보유자로 지정되고, 당집 역시 추가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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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갈매동에서 전승되고 있는 [마을](/topic/마을)제의. 현지에서는 ‘갈매동 [산치성](/topic/산치성) 도당굿’이라고 한다. 이 굿은 1995년 8월 7일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1995년 문화재 지정 당시 ‘갈내동도당굿보존회’가 기능보[유자](/topic/유자)로 지정되었다. 이후 1998년 9월 11일 [조순자](/topic/조순자)(趙順子)와 [허용업](/topic/허용업)(許龍業)이 각각 무녀당주(巫女堂主)와 잽이당주로서 예능보유자로 지정되고, 당집 역시 추가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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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경기도 구리시 갈매동에서 전승되고 있는 [마을](/topic/마을)제의. 현지에서는 ‘갈매동 [산치성](/topic/산치성) 도당굿’이라고 한다. 이 굿은 1995년 8월 7일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1995년 문화재 지정 당시 ‘갈내동도당굿보존회’가 기능보[유자](/topic/유자)로 지정되었다. 이후 1998년 9월 11일 [조순자](/topic/조순자)(趙順子)와 [허용업](/topic/허용업)(許龍業)이 각각 무녀당주(巫女堂主)와 잽이당주로서 예능보유자로 지정되고, 당집 역시 추가로 지정되었다.
내용갈매동도당굿은 2년에 한 번 짝수 해에 행해진다. 도당굿을 하는 날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굿을 하는 해에 정하지만 일반적으로 음력 3월 초순에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음력 2월 1일에 도가•[화주](/topic/화주)•[시주](/topic/시주) 등의 삼화주를 결정하고 [마을](/topic/마을)회의를 통해 전체 굿 비용과 마을의 각 가정에서 부담해야 될 비용, 굿 진행 전반에 대한 것을 결정한다. 이후 각 가정에서 굿 비용을 갹출하고 쌀을 준비하며, [산치성](/topic/산치성)터와 당집을 청소하고 도당터에 굿청을 설치한다. 음력 3월 1일에 굿날을 택일하여 결정하고, 제물준비와 굿 진행에 관한 역할을 나눈다. 당집에 굿날을 알리는 날받이 종이를 붙이고 굿이 끝날 때까지 당집 문을 열어둔다. 이어서 [우물](/topic/우물) 청소를 하고 [조라술](/topic/조라술)을 빚고 제물을 마련하면 굿의 준비가 완료된다.

갈매동도당굿은 크게 산치성과 도당굿으로 나뉜다. 산치성은 도당굿 하루 전날 밤 10시 경에 지낸다. 산치성에 앞서 오후 3시경부터 굿청 [마당](/topic/마당)에서 여성들이 안반[고사](/topic/고사)를 지낸다. 안반고사는 갈매동도당굿에서 여성들만이 참여하는 유일한 절차이다. 오후 7시경에는 조포(두부)를 올린다. 이어 노구메를 짓고 제물을 준비하여 밤 9시40분경에 산치성을 드리러 산으로 올라간다. 산치성 장소는 굿청에서 멀지 않은 동구릉 방향 산 중턱에 있다. [병풍](/topic/병풍)을 치고 다리 긴 [제상](/topic/제상)을 놓은 다음 제물을 진설한다. 산치성은 매우 엄숙하게 진행되며, 산치성이 진행되는 동안 참여자들은 아무 소리도 내서는 안 된다. 임신부나 어린이가 있는 여성이나 달거리 중인 여성은 참여할 수 없고, 남자라 하더라도 부정한 사람은 역시 참여해선 안 된다. 또한 제물을 옮기는 사람이나 불을 밝히는 사람 등 산치성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부정을 막기 위에 입에 [한지](/topic/한지)를 물고 참여해야만 한다. 산치성 과정은 [제관](/topic/제관)이 세 번 절을 하고 [축문](/topic/축문)을 읽고 소지를 한 후 다시 세 번 절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산치성을 마치고 돌아올 때도 역시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산치성을 마치고 내려와 굿청 마당에서 대를 내린다. 대를 내린 다음 서울과 경기도의 접경지역인 새오개 고개로 가서 서낭맞이를 한다. 서낭맞이를 한 다음 밤새워 동네의 각 가정을 방문하는 유가를 돈다. 대가 집에 도착하면 각 가정에서는 고사상을 차리고 절을 한다. 또한 한지에 돈을 싸서 대에 매달기도 한다. [대잡이](/topic/대잡이)는 대를 집 안으로 밀어넣어 복을 넣어 주며, 집안을 청소하듯 집안을 쓸어내기도 하며, 무당은 가정의 복을 축원한다.

새벽이 되면 유가를 멈추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도당굿을 하는 날 아침에 유가를 마져 돈다. 유가를 마[무리](/topic/무리)하고 대잡이는 도당을 향한다. 이렇게 대잡이 일행이 도당으로 올라가는 것을 ‘장문밟기’라고 한다. 맨 앞에 대잡이가 가고, 그 뒤로 만신이 따르고, 장구•북•바라•[피리](/topic/피리)•[대금](/topic/대금)•[해금](/topic/해금) 순으로 [악사](/topic/악사)들이 뒤따른다. 장문은 걸음을 함부로 떼지 않고 한 발 한 발 천천히 가기 때문에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도당에 올라 대잡이 일행이 굿청에 들어가기 전에 누군지를 알리고 굿청에 들어가는 ‘전갈’의 과정을 거쳐 굿청에 들어간다. 대잡이가 굿청을 두 바퀴 돌고 쌀을 담은 대야에 대를 세운 다음 본격적으로 도당굿이 진행된다. 도당굿은 초부정, [가망](/topic/가망)청배, 조상거리, 산할머니, 별상, [대감놀이](/topic/대감놀이), 제석거리, 호구거리, 바라, [계면떡](/topic/계면떡), 군웅거리, 걸립, 당굿, 뒷전 순으로 행해진다. 굿의 마지막 절차인 뒷전 [직전](/topic/직전)에 행해지는 당굿은 [도당신](/topic/도당신)에게 도당굿을 마쳤다는 것을 알리는 절차이다. 굿 날이 적힌 날받이 종이를 태워 소지를 올리는 것으로 끝을 낸다. 뒷전은 굿을 마치는 마지막 절차로, 도당터에서 진행한다. 무당은 액을 쫓는 액막이 행위를 하고 산 닭을 산신께 바친다. 버둥거리는 닭을 던지는데 이때 땅에 떨어진 닭의 머리 방향이 산을 향해야 한다고 한다.

갈매동도당굿은 전형적인 마을제의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산신과 도당신, 새오개 고개의 [서낭신](/topic/서낭신)을 대상으로 마을 주변과 마을의 각 가정을 돌면서 축원하는 절차가 그렇다.
참고문헌대한제국관원이력서 (국사편찬위원회, 1972)
갈매동도당굿 (갈매동도당굿 학술조사단·구리시, 1996)
박영순 구리시장 ‘시정답변’ 전문 (정한성, 남양주투데이, 2009. 7월 3일)
Dodanggut is the term for the village rituals of Gyeonggi Province, held regularly in the beginning of the first lunar month or in spring or fall, aimed at bringing peace and good harvest to the community.

Dodanggut is organized by the villagers, with a head host official, called hwaju or dangju, in charge of overseeing the preparations, and dodanggut is officiated by a shaman from outside the community. The purpose of this village ritual is to pray to [[Dodangsin](/topic/ProvincialDeity)](/topic/Dodangsin) (Provincial Deity), the village guardian deity also referred to as Dodang Grandfather or Dodang Grandmother, for peace and good fortune in the community. The characteristics and procedures of dodanggut are similar to those of other communal village rituals observed around the country including byeolsingut along the east coast, dangsangut in the Jeolla provinces and daedonggut in Hwanghae Province. One of the differences, however, is the performance of hwaraengi, a group of hereditary male shamans who show off their talent for music and creative soliloquys.
Dodanggut es un término para referirse a una serie de rituales aldeanos de la provincia de Gyeonggi-do que se realizan de manera regular en los primeros días del enero del calendario lunar o durante primavera u otoño con miras a pedir por la paz y buena cosecha en la comunidad.

Dodanggut se organiza por aldeanos, la gente elige a un representante llamado hwaju o dangju que se encarga de supervisar la preparación del ritual.

El dodanggut se oficia por un chamán contratado que viene del otro pueblo. El objetivo del ritual es rezar por la paz y la seguridad en la comunidad a la Deidad Provincial, Dodang. Teniendo cuenta de que el dodanggut es un ritual aldeano, este ritual tiene el mismo carácter que otros rituales como el byeolsingut de la costa este, el dangsangut de la provincia de Jeolla-do y el daedonggut de la provincia de Hwanghae-do. Sin embargo, cabe destacar que la actuación de hwaraengi se puede observar solamente en el dodanggut. El término de hwaraengi se refiere a un grupo de chamanes hereditarios masculinos, en la actuación, ellos lucen su talento musical y soliloquios creativos.
역사갈매동도당굿의 역사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자료는 갈매동에 전해지는 도당굿 관련 문서와 당집의 [상량문](/topic/상량문)(上樑文)이다. 도당굿 문서는 현재 「무진 삼월 초오일 [산치성](/topic/산치성) 절차」와 「단기 4193년 3월 치성 [축문](/topic/축문)기입 산치성 절차」 두 [가지](/topic/가지)가 전해오고 있다. 전자의 연대는 1928년으로 추정되며, 후자의 연대는 1960년이다. 당집 상량문은 ‘龍 昭和拾年乙亥拾月二十五日 立柱 上樑 龜’로 되어 있어서 1935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전해지는 이들 자료에만 의거한다면 갈매동도당굿의 역사는 1920년대 후반 이전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 그러나 보통 [마을](/topic/마을)제의는 마을과 같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고, 갈매동도당굿 역시 갈매동에 마을이 형성될 때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갈매동도당굿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현재 마을 주민들은 갈매동이 동구릉 뒤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동구릉이 형성된 시점에 이곳에도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짐작하여 갈매동 마을과 도당굿의 역사를 500년 정도로 추측한다. 그리고 비록 19세기 말의 기록이긴 하지만 『대한제국관원이력서(大韓帝國官員履歷書)』를 보면 1898년 3월11일 산릉참봉(山陵參奉) 판임 팔등(判任八等)에 임명된 유갑희(柳甲煕)란 인물이 당시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 갈매리에 거주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비추어 볼 때 이전 시기에도 관원을 비롯하여 동구릉과 관련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미 갈매동에 마을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적어도 이 시기에 이미 갈매동도당굿도 행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현재 전해오는 도당굿 문서의 축문에 ‘조선 경기우도 남면 노원 갈매동’이라 하여 ‘경기우도’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것 역시 갈매동도당굿의 역사가 적어도 조선 시기까지 소급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울러 적어도 현재 자료들이 보여주는 시기보다 더 이전부터 갈매동도당굿이 행해져 왔다는 것은 갈매동도당굿을 담당해 온 무당들의 계보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현재 갈매동도당굿은 4대째 대를 이어온 무당 집안 출신 무당이 담당하고 있다. 한 집안 출신 무당들이 4대째 갈매동도당굿을 담당해 왔다는 것은 갈매동도당굿이 행해진 지 120년은 넘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렇게 본다면 갈매동도당굿은 적어도 조선시기에 이미 형성되었으며, 그 이후 현재까지 갈매동 주민들에 의해 행해져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광복 전까지는 갈매동에 순흥 안씨와 벽진 이씨가 대성(大姓)을 이루고 살았으나 광복 이후 급격한 사회변동과 함께 많은 가구가 전출하였고 1990년대에는 서울 생활권에 포함되면서 많은 외지인들이 이주해왔다. 그럼에도 주변 지역에 비해 갈매동에는 원주민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마을의 경제 수준이 높아서 인근에서 [기와집](/topic/기와집)이 많은 마을로 소문이 나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갈매동도당굿 전승의 든든한 사회적 기반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현재에도 마을 주민들의 도당굿 참여도가 높아서, 현재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은 물론 외지로 나간 사람들도 도당굿에 참여한다. 외지에 나가 살더라도 도당굿 비용을 부담하며, 도당굿 당일에 찾아와서 소지를 올리고 [굿놀이](/topic/굿놀이)에 동참한다. 1996년 조사 당시 200여 가구의 가정에서 갈매동도당굿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갈매동도당굿은 지금까지 격년에 한 번 짝수 년에 행해져 왔다. 2009년 7월에 갈매동도당굿 전수관이 완공되었고, 2010년부터 갈매동도당굿은 새롭게 지어진 전수관에서 행해진다.
以祈求村庄的平安和丰年为目的,京畿道地区于正月初或春,秋季定期进行的村庄巫祭。

“都堂巫祭”是以村里人为主进行的巫祭,先确定代表者化主或堂主,再从外地请巫师进行祈求村庄安宁的定期仪礼。村庄巫祭的目的是向守护村庄的村庄神,也就是都堂神或都堂公公和都堂婆婆,祈求村庄的安宁以及为村里人祈福。都堂巫祭是一种村庄巫祭,是同东海岸地区的“别神巫祭”,全罗道地区的“堂山巫祭”,黄海道地区的“大同巫祭”具有相同性质的村庄共同体信仰。然而,通过世袭来演奏巫乐,称为“花郎觋”的男乐师尽情发挥自己的演奏技能和独创性的说唱,这点是其他地区的村庄巫祭中所没有的现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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