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신

한국무속신앙사전
지붕신
[지붕](/topic/지붕)을 튼튼하게 받들어 주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잡귀와 부정을 막는 동시에 복을 깃들게 하는 가정신앙 신격의 하나. 지붕신에게 올리는 특별한 의례는 전해지지 않는다. 지붕의 용마루, 내림마루, 귀마루 끝에 바래기[기와](/topic/기와)(망와 또는 망새)를 장치하거나 지붕에 주물(呪物)을 장치하여 지붕신앙을 표현할 뿐이다.
definition
[지붕](/topic/지붕)을 튼튼하게 받들어 주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잡귀와 부정을 막는 동시에 복을 깃들게 하는 가정신앙 신격의 하나. 지붕신에게 올리는 특별한 의례는 전해지지 않는다. 지붕의 용마루, 내림마루, 귀마루 끝에 바래기[기와](/topic/기와)(망와 또는 망새)를 장치하거나 지붕에 주물(呪物)을 장치하여 지붕신앙을 표현할 뿐이다.
mp3Cnt
0
wkorname
이영진
정의[지붕](/topic/지붕)을 튼튼하게 받들어 주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잡귀와 부정을 막는 동시에 복을 깃들게 하는 가정신앙 신격의 하나. 지붕신에게 올리는 특별한 의례는 전해지지 않는다. 지붕의 용마루, 내림마루, 귀마루 끝에 바래기[기와](/topic/기와)(망와 또는 망새)를 장치하거나 지붕에 주물(呪物)을 장치하여 지붕신앙을 표현할 뿐이다.
정의[지붕](/topic/지붕)을 튼튼하게 받들어 주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잡귀와 부정을 막는 동시에 복을 깃들게 하는 가정신앙 신격의 하나. 지붕신에게 올리는 특별한 의례는 전해지지 않는다. 지붕의 용마루, 내림마루, 귀마루 끝에 바래기[기와](/topic/기와)(망와 또는 망새)를 장치하거나 지붕에 주물(呪物)을 장치하여 지붕신앙을 표현할 뿐이다.
내용[지붕](/topic/지붕)신 신앙은 잡귀와 부정을 막고[辟邪] 복을 깃들게 하기 위해 바래기[기와](/topic/기와)를 지붕의 용[마루](/topic/마루), 내림마루, 귀마루 끝에 붙이는 방법과 바래기기와 외에 주술적 힘을 가졌다고 믿는 주물을 지붕의 일정한 곳에 안치하여 잡귀와 부정을 막는 방법 등으로 나타난다.

바래기기와는 망와, 망새, 망새기와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붕의 용마루, 내림마루, 귀마루 끝에 붙이는 기와를 특별히 바래기기와라고 부른다. ‘바래기기와’라는 말의 ‘바래기’와 바래기기와의 또 다른 이름인 ‘망와’와 ‘망새기와’에 들어가는 한자어 ‘망(望)’은 “멀리 바라보다.”라는 뜻이다. “망본다.”라고 할 때도 이 한자를 쓴다. 실제로 바래기기와는 지붕의 가장 높은 곳인 용마루 양 끝과 지붕의 네 모퉁이에서 사방팔방을 망보듯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바래기기와는 일반적인 기와라기보다 망보듯이 지키면서 집(건물)으로 들어오는 잡귀와 부정을 막기 위해 초자연적인 힘을 불어넣은 상징물이다. 지붕의 사방팔방에 바래기기와를 위치시킨 것은 잡귀와 부정을 철저하게 막겠다는 의도이다.

바래기기와는 암키와를 뒤집어 붙이거나 반기와를 사용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궁궐, 사찰, 양반 사대부가, 향교, [재실](/topic/재실) 등 기념비적 건물에는 특수한 모양으로 제작하거나 특별한 문양을 새긴 바래기기와를 많이 사용하였다. 바래기기와의 특수한 사례를 보면 용마루 양 끝에 붙이는 바래기기와의 경우 모양에 따라 치미(鴟尾), 취두(鷲頭), 용두(龍頭)라고 부른다. 치미는 상상의 날짐승 꽁지 모양을 특별하게 제작한 기와이다. 이것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중기까지 성행하다가 취두가 도입되면서부터 점차 쇠퇴하여 조선시대의 지붕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경북 경주 [황룡사](/topic/황룡사)지에서 발굴된 치미는 높이가 2m가 넘는 대규모의 것이고, 경주 기림사에는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치미가 보존되어 있다. 취두라 부르는 바래기기와는 독수리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기와로서 고려 중기 이후에 성행하기 시작하였다. 기념비적 건물의 취두에는 금박을 입히고 제의를 올리기도 하였다. 독수리와 같은 새의 꽁지와 머리 모양의 바래기기와를 장식한 이유는 새가 둥지를 수호하듯 부정과 화재 등을 막아 달라는 뜻이다. 고려시대 이후에는 용마루 바래기기와에 용머리, 즉 용두가 추가되었다. 이 또한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용으로부터 집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민간의식의 산물이다.

지붕의 내림마루와 귀마루 끝에 붙이는 바래기기와는 일반적으로 암키와와 반기와를 사용하였지만 특별한 문양을 넣은 기와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형을 보면, 이른바 귀면와라고 하여 용의 안면(顔面)이나 용의 몸체를 새긴 용 문양, 봉황과 같은 서조(瑞鳥) 문양, 천마와 같은 서수(瑞獸) 문양, 기하학적 문양을 새긴 기하 문양, 명문이나 ‘복(福)’자, ‘수(壽)’자와 같은 문자 문양, 사람의 얼굴을 새긴 인면 문양, 불교사찰에 많이 보이는 불교 관련 문양 등을 새긴 바래기기와가 보인다. 이 모두가 초자연적인 힘을 불어넣어 집을 수호하려는 의도이지만 가장 보편적이면서 널리 알려진 사례는 귀면와이다. 귀면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귀신 얼굴을 새긴 기와라는 뜻이다. 지금 학계에서는 귀면와의 문양이 귀신의 얼굴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용이라는 주장과 도깨비라는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바래기기와 외에 지붕에 주물을 장치하여 지붕을 신앙하는 방법도 많이 보인다. 잘 알려진 사례로 잡상(雜像), 일월기(日月旗), 지네철 등을 들 수 있다.

잡상은 지붕 내림마루의 등에 안치하는 상징물로서 잡귀와 부정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안치한 벽사용 상징물이다. 잡상은 중국소설 『서유기(西遊記)』에 등장하는 인물과 지신[土神]을 형상화한 모형을 기와처럼 구운 것이다. 잡상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지신은 대당사부(大唐師傅, 삼장법사), 손행자(孫行者, 손오공), 저팔계(豬八戒), 사화상(沙和尙, 사오정), 마화상(麻和尙), 삼살보살(三煞菩薩), 이구룡(二口龍), 천산갑(穿山甲), 이귀박(二鬼朴), 나토두(羅土頭) 등이다. 일반 주택에는 잡상이 보이지 않는다. 궁궐의 전각이나 행궁, 성문, 능(陵)의 정자각 등 기념비적 건물에 잡상을 안치하였다.

![가정신앙 지붕신](/upload/img/20170106/20170106124643_t_.jpg)

지붕구조도일월기는 지붕 용마루 양 끝에 꽂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깃발을 말한다. 이에 대한 기록은 19세기 중반에 쓴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나온다. 여기에는 “해와 달로부터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종이로 해와 달을 오려서 나무에 매달아 지붕 용마루에 꽂아 액운을 막는다.”라고 적혀 있다. 기록대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민간에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에 일월기를 만들어 지붕에 꽂고 한 해 동안 두는 풍속이 있었다. 일월기를 제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topic/가지)이다. 해를 상징하는 붉은색 원을 그린 뒤 나뭇가지에 오려 붙이는 방법, 달을 상징하는 검은색 원을 그려 나뭇가지에 오려 붙이는 방법이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정방형의 [한지](/topic/한지)를 두 장 오려 하나에는 한자로 ‘일(日)’자를 쓰거나 원을 그린다. 다른 한 장에는 한자로 ‘월(月)’자를 쓰거나 공간에 검은 칠을 한 원을 그린다. 지붕에 일월기를 꽂는 이유는 음양의 기를 조화시켜 액운을 막으려는 의도이다.

지네철은 지네 모양으로 제작된 목재 고정용 철물이다. 기와지붕의 한 형태인 [팔작지붕](/topic/팔작지붕)과 [맞배지붕](/topic/맞배지붕)의 합각에 지네철이 많이 보인다. 합각은 팔작지붕과 맞배지붕 용마루 밑에 설치된 삼각형의 벽면을 말한다. 이 삼각 벽면의 가장자리를 보면 두 개의 박공널을 ‘인(人)’자 모양으로 세운 뒤 맞붙는 자리를 흔히 지네철로 고정시켰다. 지네철은 두 개의 박공널을 고정시키는 실용성도 있지만, 화재를 방지하고 자손의 번창을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네는 많은 발을 달고 있으며, 습지에서 서식한다. 이에 따라 민속에서는 지네의 많은 발처럼 자손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한편 지네가 습지, 즉 물을 좋아하듯 화재를 방지해 달라는 뜻에서 지붕에 지네철을 부착하는 관행이 있어 왔다.
내용[지붕](/topic/지붕)신 신앙은 잡귀와 부정을 막고[辟邪] 복을 깃들게 하기 위해 바래기[기와](/topic/기와)를 지붕의 용[마루](/topic/마루), 내림마루, 귀마루 끝에 붙이는 방법과 바래기기와 외에 주술적 힘을 가졌다고 믿는 주물을 지붕의 일정한 곳에 안치하여 잡귀와 부정을 막는 방법 등으로 나타난다.

바래기기와는 망와, 망새, 망새기와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붕의 용마루, 내림마루, 귀마루 끝에 붙이는 기와를 특별히 바래기기와라고 부른다. ‘바래기기와’라는 말의 ‘바래기’와 바래기기와의 또 다른 이름인 ‘망와’와 ‘망새기와’에 들어가는 한자어 ‘망(望)’은 “멀리 바라보다.”라는 뜻이다. “망본다.”라고 할 때도 이 한자를 쓴다. 실제로 바래기기와는 지붕의 가장 높은 곳인 용마루 양 끝과 지붕의 네 모퉁이에서 사방팔방을 망보듯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바래기기와는 일반적인 기와라기보다 망보듯이 지키면서 집(건물)으로 들어오는 잡귀와 부정을 막기 위해 초자연적인 힘을 불어넣은 상징물이다. 지붕의 사방팔방에 바래기기와를 위치시킨 것은 잡귀와 부정을 철저하게 막겠다는 의도이다.

바래기기와는 암키와를 뒤집어 붙이거나 반기와를 사용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궁궐, 사찰, 양반 사대부가, 향교, [재실](/topic/재실) 등 기념비적 건물에는 특수한 모양으로 제작하거나 특별한 문양을 새긴 바래기기와를 많이 사용하였다. 바래기기와의 특수한 사례를 보면 용마루 양 끝에 붙이는 바래기기와의 경우 모양에 따라 치미(鴟尾), 취두(鷲頭), 용두(龍頭)라고 부른다. 치미는 상상의 날짐승 꽁지 모양을 특별하게 제작한 기와이다. 이것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중기까지 성행하다가 취두가 도입되면서부터 점차 쇠퇴하여 조선시대의 지붕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경북 경주 [황룡사](/topic/황룡사)지에서 발굴된 치미는 높이가 2m가 넘는 대규모의 것이고, 경주 기림사에는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치미가 보존되어 있다. 취두라 부르는 바래기기와는 독수리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기와로서 고려 중기 이후에 성행하기 시작하였다. 기념비적 건물의 취두에는 금박을 입히고 제의를 올리기도 하였다. 독수리와 같은 새의 꽁지와 머리 모양의 바래기기와를 장식한 이유는 새가 둥지를 수호하듯 부정과 화재 등을 막아 달라는 뜻이다. 고려시대 이후에는 용마루 바래기기와에 용머리, 즉 용두가 추가되었다. 이 또한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용으로부터 집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민간의식의 산물이다.

지붕의 내림마루와 귀마루 끝에 붙이는 바래기기와는 일반적으로 암키와와 반기와를 사용하였지만 특별한 문양을 넣은 기와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형을 보면, 이른바 귀면와라고 하여 용의 안면(顔面)이나 용의 몸체를 새긴 용 문양, 봉황과 같은 서조(瑞鳥) 문양, 천마와 같은 서수(瑞獸) 문양, 기하학적 문양을 새긴 기하 문양, 명문이나 ‘복(福)’자, ‘수(壽)’자와 같은 문자 문양, 사람의 얼굴을 새긴 인면 문양, 불교사찰에 많이 보이는 불교 관련 문양 등을 새긴 바래기기와가 보인다. 이 모두가 초자연적인 힘을 불어넣어 집을 수호하려는 의도이지만 가장 보편적이면서 널리 알려진 사례는 귀면와이다. 귀면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귀신 얼굴을 새긴 기와라는 뜻이다. 지금 학계에서는 귀면와의 문양이 귀신의 얼굴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용이라는 주장과 도깨비라는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바래기기와 외에 지붕에 주물을 장치하여 지붕을 신앙하는 방법도 많이 보인다. 잘 알려진 사례로 잡상(雜像), 일월기(日月旗), 지네철 등을 들 수 있다.

잡상은 지붕 내림마루의 등에 안치하는 상징물로서 잡귀와 부정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안치한 벽사용 상징물이다. 잡상은 중국소설 『서유기(西遊記)』에 등장하는 인물과 지신[土神]을 형상화한 모형을 기와처럼 구운 것이다. 잡상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지신은 대당사부(大唐師傅, 삼장법사), 손행자(孫行者, 손오공), 저팔계(豬八戒), 사화상(沙和尙, 사오정), 마화상(麻和尙), 삼살보살(三煞菩薩), 이구룡(二口龍), 천산갑(穿山甲), 이귀박(二鬼朴), 나토두(羅土頭) 등이다. 일반 주택에는 잡상이 보이지 않는다. 궁궐의 전각이나 행궁, 성문, 능(陵)의 정자각 등 기념비적 건물에 잡상을 안치하였다.

![가정신앙 지붕신](/upload/img/20170106/20170106124643_t_.jpg)

지붕구조도일월기는 지붕 용마루 양 끝에 꽂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깃발을 말한다. 이에 대한 기록은 19세기 중반에 쓴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나온다. 여기에는 “해와 달로부터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종이로 해와 달을 오려서 나무에 매달아 지붕 용마루에 꽂아 액운을 막는다.”라고 적혀 있다. 기록대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민간에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에 일월기를 만들어 지붕에 꽂고 한 해 동안 두는 풍속이 있었다. 일월기를 제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topic/가지)이다. 해를 상징하는 붉은색 원을 그린 뒤 나뭇가지에 오려 붙이는 방법, 달을 상징하는 검은색 원을 그려 나뭇가지에 오려 붙이는 방법이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정방형의 [한지](/topic/한지)를 두 장 오려 하나에는 한자로 ‘일(日)’자를 쓰거나 원을 그린다. 다른 한 장에는 한자로 ‘월(月)’자를 쓰거나 공간에 검은 칠을 한 원을 그린다. 지붕에 일월기를 꽂는 이유는 음양의 기를 조화시켜 액운을 막으려는 의도이다.

지네철은 지네 모양으로 제작된 목재 고정용 철물이다. 기와지붕의 한 형태인 [팔작지붕](/topic/팔작지붕)과 [맞배지붕](/topic/맞배지붕)의 합각에 지네철이 많이 보인다. 합각은 팔작지붕과 맞배지붕 용마루 밑에 설치된 삼각형의 벽면을 말한다. 이 삼각 벽면의 가장자리를 보면 두 개의 박공널을 ‘인(人)’자 모양으로 세운 뒤 맞붙는 자리를 흔히 지네철로 고정시켰다. 지네철은 두 개의 박공널을 고정시키는 실용성도 있지만, 화재를 방지하고 자손의 번창을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네는 많은 발을 달고 있으며, 습지에서 서식한다. 이에 따라 민속에서는 지네의 많은 발처럼 자손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한편 지네가 습지, 즉 물을 좋아하듯 화재를 방지해 달라는 뜻에서 지붕에 지네철을 부착하는 관행이 있어 왔다.
역사언제부터 [지붕](/topic/지붕)에 지붕신을 안치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지붕신으로 믿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바래기[기와](/topic/기와)’나 귀면와(鬼面瓦)를 사용한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불교사찰을 중심으로 대규모 기념비적 건물 지붕에 각종 문양을 새긴 기와를 얹었던 흔적이 발굴유물을 통하여 확인되고 있다. 잡귀를 물리친다는 벽사(辟邪) 또는 축귀(逐鬼)에 대한 관념이 불교를 통하여 전파되었고, 실제로 불교사찰의 지붕을 비롯한 곳곳에 벽사를 위한 장식이 많았던 것을 볼 때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삼국시대에 이미 지붕신 신앙이 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여러 집터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을 보면 고구려시대에는 지붕의 내림마루 끝에 바래기기와를 달았다. 또 바래기기와를 비롯해 수[막새](/topic/막새)와 반와당(半瓦當), 지붕마루의 차꼬막이 위에 이중으로 얹은 부고 등에 귀면와를 사용하였다. 백제시대에는 [서까래](/topic/서까래) 막새기와에 귀면와를 사용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기와지붕의 내림마루와 귀마루 끝에 바래기기와를 붙였으며, 많은 경우 귀면와를 사용하였다. 이런 추세는 고려와 조선시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따라서 지붕을 중요시한 나머지 벽사를 위해 지붕에 바래기기와나 주물을 안치한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언제부터 [지붕](/topic/지붕)에 지붕신을 안치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지붕신으로 믿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바래기[기와](/topic/기와)’나 귀면와(鬼面瓦)를 사용한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불교사찰을 중심으로 대규모 기념비적 건물 지붕에 각종 문양을 새긴 기와를 얹었던 흔적이 발굴유물을 통하여 확인되고 있다. 잡귀를 물리친다는 벽사(辟邪) 또는 축귀(逐鬼)에 대한 관념이 불교를 통하여 전파되었고, 실제로 불교사찰의 지붕을 비롯한 곳곳에 벽사를 위한 장식이 많았던 것을 볼 때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삼국시대에 이미 지붕신 신앙이 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여러 집터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을 보면 고구려시대에는 지붕의 내림마루 끝에 바래기기와를 달았다. 또 바래기기와를 비롯해 수[막새](/topic/막새)와 반와당(半瓦當), 지붕마루의 차꼬막이 위에 이중으로 얹은 부고 등에 귀면와를 사용하였다. 백제시대에는 [서까래](/topic/서까래) 막새기와에 귀면와를 사용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기와지붕의 내림마루와 귀마루 끝에 바래기기와를 붙였으며, 많은 경우 귀면와를 사용하였다. 이런 추세는 고려와 조선시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따라서 지붕을 중요시한 나머지 벽사를 위해 지붕에 바래기기와나 주물을 안치한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사례대부분의 [기와](/topic/기와)[지붕](/topic/지붕)에는 바래기기와를 장식하여 왔다. 일반적으로는 암키와나 반기와를 사용하였지만 궁궐, 사찰, 양반 사대부가 등에는 특수한 모양의 바래기기와를 장식하였다.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 대웅전과 경북 구미시 도리사 선원 등에는 용마루에 용머리형 바래기기와를 장식하였다.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 있는 불갑사 대웅전(보물 830호)에는 용마루에 보주를 얹은 용면와를 얹었다. 구미시 도리사 극락전과 서울의 경복궁, 남[대문](/topic/대문) 용마루에는 치미형 바래기기와를 얹었다. 경북 안동시 군자리 광산 김씨 고택에는 용마루, 귀마루, 내림마루에 용면와나 용틀임 와당을 바래기기와로 사용하였다. 전남 보성군 보성읍 옥암리와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서는 용마루, 내림마루, 귀마루에 암키와와 수키와로 탑을 쌓은 뒤 기와를 세우는 탑형 바래기기와를 안치하였다.

주술형 지붕신격인 잡상은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등 궁궐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경복궁의 경우 임금이 머물던 근정전에 7개, 연희를 하던 경회루에 11개, 세자가 머물던 자선당에 9개, 수정전에 6개, 협길당에 5개, 자경전에 4개, 청연루에 3개의 잡상이 얹혀 있다. 덕수궁 중[화전](/topic/화전)에는 10개, 창경궁 명정전에는 5개의 잡상이 있다. 덕흥대원군묘를 관리하던 흥국사의 대웅전, 만월보전, 영산전에도 잡상이 있다. 덕흥대원군은 조선 선조의 아버지이다.

충남지역의 무속에서는 지붕신을 용마[장군](/topic/장군) 또는 용마신장이라고 부른다. 무속에서 용마장군은 천상계를 지키는 신장의 하나이다. 용마장군은 무신도에도 보인다. 무신도에서 용머리는 한 말을 타고 활을 높이 치켜든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지역사례대부분의 [기와](/topic/기와)[지붕](/topic/지붕)에는 바래기기와를 장식하여 왔다. 일반적으로는 암키와나 반기와를 사용하였지만 궁궐, 사찰, 양반 사대부가 등에는 특수한 모양의 바래기기와를 장식하였다.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 대웅전과 경북 구미시 도리사 선원 등에는 용마루에 용머리형 바래기기와를 장식하였다.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 있는 불갑사 대웅전(보물 830호)에는 용마루에 보주를 얹은 용면와를 얹었다. 구미시 도리사 극락전과 서울의 경복궁, 남[대문](/topic/대문) 용마루에는 치미형 바래기기와를 얹었다. 경북 안동시 군자리 광산 김씨 고택에는 용마루, 귀마루, 내림마루에 용면와나 용틀임 와당을 바래기기와로 사용하였다. 전남 보성군 보성읍 옥암리와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서는 용마루, 내림마루, 귀마루에 암키와와 수키와로 탑을 쌓은 뒤 기와를 세우는 탑형 바래기기와를 안치하였다.

주술형 지붕신격인 잡상은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등 궁궐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경복궁의 경우 임금이 머물던 근정전에 7개, 연희를 하던 경회루에 11개, 세자가 머물던 자선당에 9개, 수정전에 6개, 협길당에 5개, 자경전에 4개, 청연루에 3개의 잡상이 얹혀 있다. 덕수궁 중[화전](/topic/화전)에는 10개, 창경궁 명정전에는 5개의 잡상이 있다. 덕흥대원군묘를 관리하던 흥국사의 대웅전, 만월보전, 영산전에도 잡상이 있다. 덕흥대원군은 조선 선조의 아버지이다.

충남지역의 무속에서는 지붕신을 용마[장군](/topic/장군) 또는 용마신장이라고 부른다. 무속에서 용마장군은 천상계를 지키는 신장의 하나이다. 용마장군은 무신도에도 보인다. 무신도에서 용머리는 한 말을 타고 활을 높이 치켜든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의의[지붕](/topic/지붕)에 신격을 안치하고 신앙하는 이유는 건축 구조상 지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붕은 가옥의 꼭대기 부분을 덮어 비나 눈, 햇볕, 이슬 등을 막는다. 지붕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하여 건축술이 발달해 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건물에서 지붕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이 때문에 민간에서는 지붕을 하늘이나 인체의 머리에 비유할 정도로 중요시해 왔다. 집의 [기단](/topic/기단)부를 땅, 지붕을 하늘, [기둥](/topic/기둥)과 벽채를 사람에 각각 비유하였다. 사람들이 땅과 하늘 사이에 살듯 집을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로 여긴 것이다. 민간에서 초[가지](/topic/가지)붕 용마루에 성주신의 [상투](/topic/상투)를 상징하는 ‘유지기’를 만들어 세우듯 지붕은 성주신의 머리, 기둥은 성주신의 몸통, 기단은 성주신의 다리라고 믿기도 한다.

민간에서 지붕을 중요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과 상서로운 기운, 악운, 죽은 자의 영혼 등이 지붕을 통하여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북 남원지역에서는 하늘의 복이 들어오라고 지붕 용마루 한가운데에 수키와 두 장을 ‘팔(八)’자로 세운다. 이것을 복문(福門)이라고 부른다.

하늘이 높듯 지붕도 높은 곳이다. 민간에서는 높은 곳을 신성시하였다. 높은 곳은 신성한 하늘과 맞닿아 서로 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붕 또한 하늘과 맞닿아 서로 통하는 곳으로 믿어 왔다.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길흉화복(吉凶禍福)도 지붕을 통하여 드나든다고 믿는다. 지붕을 신성시하고 신격과 주물을 안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신성한 지붕에 지붕신을 안치하여 지붕을 튼튼하게 받들어 주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잡귀와 부정을 막는 동시에 복이 깃들도록 기원한 것이다.
참고문헌집의 사회사 (강영환, 웅진출판사, 1992)
문화재조사연구입문 (이영진, 학문사, 2000)
신라와당 (국립경주박물관, 2000)
한국의 집지킴이 (김광언, [다락](/topic/다락)방, 2000)
한국의 가정신앙-충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와당과 망와 (최민정, vmspace.com, kor)
의의[지붕](/topic/지붕)에 신격을 안치하고 신앙하는 이유는 건축 구조상 지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붕은 가옥의 꼭대기 부분을 덮어 비나 눈, 햇볕, 이슬 등을 막는다. 지붕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하여 건축술이 발달해 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건물에서 지붕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이 때문에 민간에서는 지붕을 하늘이나 인체의 머리에 비유할 정도로 중요시해 왔다. 집의 [기단](/topic/기단)부를 땅, 지붕을 하늘, [기둥](/topic/기둥)과 벽채를 사람에 각각 비유하였다. 사람들이 땅과 하늘 사이에 살듯 집을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로 여긴 것이다. 민간에서 초[가지](/topic/가지)붕 용마루에 성주신의 [상투](/topic/상투)를 상징하는 ‘유지기’를 만들어 세우듯 지붕은 성주신의 머리, 기둥은 성주신의 몸통, 기단은 성주신의 다리라고 믿기도 한다.

민간에서 지붕을 중요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과 상서로운 기운, 악운, 죽은 자의 영혼 등이 지붕을 통하여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북 남원지역에서는 하늘의 복이 들어오라고 지붕 용마루 한가운데에 수키와 두 장을 ‘팔(八)’자로 세운다. 이것을 복문(福門)이라고 부른다.

하늘이 높듯 지붕도 높은 곳이다. 민간에서는 높은 곳을 신성시하였다. 높은 곳은 신성한 하늘과 맞닿아 서로 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붕 또한 하늘과 맞닿아 서로 통하는 곳으로 믿어 왔다.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길흉화복(吉凶禍福)도 지붕을 통하여 드나든다고 믿는다. 지붕을 신성시하고 신격과 주물을 안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신성한 지붕에 지붕신을 안치하여 지붕을 튼튼하게 받들어 주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잡귀와 부정을 막는 동시에 복이 깃들도록 기원한 것이다.
참고문헌집의 사회사 (강영환, 웅진출판사, 1992)
문화재조사연구입문 (이영진, 학문사, 2000)
신라와당 (국립경주박물관, 2000)
한국의 집지킴이 (김광언, [다락](/topic/다락)방, 2000)
한국의 가정신앙-충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와당과 망와 (최민정, vmspace.com, kor)
조선총독부朝鮮巫俗の硏究赤松智城·秋葉隆1938
동문선조선무속의 연구심우성 옮김1991
태학사한국연극사 연구사진실1997
수원문화예술사, 화성연구회조선 후기 수원 지역 연행예술허용호2004),
한국무속학회일제강점기 경기도 민속신앙의 양상과 의의허용호2006
지네철
13914
지네철
내림마루 끝에 용면와를 바래기기와로 안치
13913
내림마루 끝에 용면와를 바래기기와로 안치
탑형 귀마루 바래기기와
13912
탑형 귀마루 바래기기와
용면형 귀마루 바래기기와
13911
용면형 귀마루 바래기기와
탑형 용마루 바래기기와
13910
탑형 용마루 바래기기와
쌍용문 기와를 용마루에 장식한 바래기기와
13909
쌍용문 기와를 용마루에 장식한 바래기기와
용면와를 안치한 용마루 바래기기와
13908
용면와를 안치한 용마루 바래기기와
용트림을 문양한 용마루 바래기기와
13907
용트림을 문양한 용마루 바래기기와
용두형 용마루 바래기기와
13906
용두형 용마루 바래기기와
지네철
13914
지네철
내림마루 끝에 용면와를 바래기기와로 안치
13913
내림마루 끝에 용면와를 바래기기와로 안치
탑형 귀마루 바래기기와
13912
탑형 귀마루 바래기기와
용면형 귀마루 바래기기와
13911
용면형 귀마루 바래기기와
탑형 용마루 바래기기와
13910
탑형 용마루 바래기기와
쌍용문 기와를 용마루에 장식한 바래기기와
13909
쌍용문 기와를 용마루에 장식한 바래기기와
용면와를 안치한 용마루 바래기기와
13908
용면와를 안치한 용마루 바래기기와
용트림을 문양한 용마루 바래기기와
13907
용트림을 문양한 용마루 바래기기와
용두형 용마루 바래기기와
13906
용두형 용마루 바래기기와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