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음리비멘이당제

한국무속신앙사전
제주어음리비멘이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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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음리비멘이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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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식
특징무속식과 유교식 제사법이 혼합된 양상을 보여 준다. 게다가 간편화 현상이 더해져서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새를 보이기도 한다.
특징무속식과 유교식 제사법이 혼합된 양상을 보여 준다. 게다가 간편화 현상이 더해져서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새를 보이기도 한다.
정의제주어음리비멘이당제
정의제주어음리비멘이당제
이칭당을 근거로 하여 벌이는 [마을](/topic/마을)제사여서 ‘당제(堂祭)’라고 한다. 제의 방식은 유교식이어서 다른 마을처럼 포제(酺祭)라고 할 듯도 하지만 당제라고만 한다. 달리 ‘본향제(本鄕祭)’라고도 한다. 이것은 [축문](/topic/축문)에 함께 적어 두는 명칭일 뿐 사람들의 입에 흔히 오르내리는 명칭이 아니다.
이칭당을 근거로 하여 벌이는 [마을](/topic/마을)제사여서 ‘당제(堂祭)’라고 한다. 제의 방식은 유교식이어서 다른 마을처럼 포제(酺祭)라고 할 듯도 하지만 당제라고만 한다. 달리 ‘본향제(本鄕祭)’라고도 한다. 이것은 [축문](/topic/축문)에 함께 적어 두는 명칭일 뿐 사람들의 입에 흔히 오르내리는 명칭이 아니다.
내용비멘이당제는 [마을](/topic/마을) 뒷동산 ‘당밧’ 지경에서 지낸다. 이곳에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흔히 ‘당제단’이라고 한다. 장방형으로 담을 높이 두르고 그 안에 역시 장방형의 제단을 두었다. 본래는 잡석을 대충 쌓아 제단으로 이용했으며 2003년에 지금의 제단을 마련하였다. 2,036㎡(617평)에 이르는 부지를 확보하고 진입로를 포장하였다.

제단 가까이에 이 마을 본향당인 비멘이할망당이 있다. 본래 이곳에서는 이 일대에서 이름난 심방을 불러 당굿을 크게 벌였다. 구전에 따르면 이 마을의 본향신은 송씨할망, 문씨영감이라고 한다. 송씨할망은 비멘이할망당에 좌정한 신이다. 문씨영감은 따로 좌정하여 당이 별도로 있었으나 오래전에 사라졌다. 문씨영감은 돼지고기를 먹은 부인이 부정하다 여겨 별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굿을 할 때에는 ‘공새미’에서 준비하여 깃발을 여러 개 들고 풍물을 치면서 당으로 이동하였다. ‘본향듦’에서는 문씨영감을 당으로 불러 모셔야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할망․하르방 상봉시킨다’고 하였다. 그런데 워낙 하르방을 모시는 것이 힘들어 심방들이 자진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한 시간 넘게 산판을 놓아 보아도 하르방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점괘가 나오는 경우가 흔하였다. 그러면 주민들 가운데 부정한 사람이 있다고 하여 술을 흩뿌리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당굿은 하루 종일 이어[지게](/topic/지게) 마련이었다. 이와 같이 하니 이 마을 당굿이 구경거리로 부족함이 없었다. 사람들은 송당 다음으로 당굿의 규모가 컸다고 자랑한다. 인근의 봉성리, 납읍리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당굿을 구경하곤 하였다고 한다. 큰심방이 사라지자 당굿은 지속되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당굿을 대신하여 당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요즘에는 일 년에 한 번 당에 가서 기원한다. 가족이 아프면 두 차례 찾기도 한다. 당에 갈 때에는 돼지고기 제수를 조금씩 따로 놓아 두었다가 [가지](/topic/가지)고 가서 바친다.

당제를 지내기에 앞서 마을총회를 열어 [제관](/topic/제관) 선정을 비롯한 제반사항을 의논한다. 마을총회는 대개 제일을 닷새쯤 앞두고 연다. 미리 마을 어른들과 의논하여 가려 둔 제관 후보자를 총회에서 공개하여 허가를 얻는다. 대개 대축을 먼저 선정하고 나머지 제관은 어른들과 의논하여 결정하는 방식을 취한다. 제관은 모두 다섯 명으로 구성된다. [헌관](/topic/헌관) 세 명, 집사 한 명, 전사관 한 명이다. [초헌](/topic/초헌)관은 이장이 맡는다. 집사는 대축을 겸한다. 전사관은 제물 구입과 준비를 전담한다. 제관은 장가든 사람 가운데 특히 복 좋은 이로 선정한다. 제관이 선정되면 제관들이 정성을 들일 제청을 정한다. 제청은 개인 집 가운데 비교적 깨끗한 곳을 고른다. 오후 4시쯤 미리 작성해 둔 원고를 토대로 하여 [축문](/topic/축문)을 쓴다. 제관들에게는 약간의 수고료를 지급한다. 과거와 달리 여러 가지 이유로 제관을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데 따른 조치이다.

제일을 앞두고 마을 입구, 제청 입구, 제장 입구에 [금줄](/topic/금줄)을 친다. 마을 입구에는 금줄을 높이 친다. 제관들은 제일 아침부터 행제할 때까지 제청에서 근신한다. 본래 일주일 근신하던 것이 사흘로 줄었다가 다시 하루로 바뀐 것이다. 지금도 앞선 이틀 정도는 집에서 정성을 들이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인적이 드문 아침 일찍 제청에 모인다. 아침 일찍 회의하여 제반 사항을 의논한다. 이를 ‘기돗제회의’라고 한다. 제청에 있는 동안 특별히 음식을 금기하지는 않는다. 돼지고기를 금기해야 한다는 것도 없다.

제비는 마을 공금으로 마련한다. 과거에는 가구별로 돈을 걷어 제비를 마련하였으나 지금은 공금이 충분하여 제비를 따로 걷지 않는다. 마을 경내에 소재한 유력 기관으로부터 상당액을 기부받고 있어 마을 공금이 풍족하다.

제물은 닭, 메, [시루떡](/topic/시루떡), 돌레떡, 과일([대추](/topic/대추), 밤, 귤 등), 채소([미나리](/topic/미나리)), 생선, 소주 등이다. 희생(犧牲)으로는 수탉을 쓴다. 하르방신인 문씨영감이 돼지고기를 금기하기 때문이다. 이 닭을 ‘대제물(大祭物)’이라고 한다. 닭은 두 마리, 메도 두 그릇 준비한다. 이것은 할망․하르방 2위에 따로 올리기 위함이다. 다른 제물도 할망․하르방 2위에 올릴 수 있게 준비한다. 닭, 메, 시루떡, 돌레떡 등은 당굿을 할 때 흔히 쓰이는 제물이다. 이들 제물은 모두 제청으로 정해진 사가(私家)에서 준비한다. 그 집의 주부가 제관들의 식사와 제물 차림을 도맡는다. 당제에 참여가 허용되는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 결국 제청을 정함에 있어 그 집에 제물을 준비할 만한 능력이 있는 이가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여건을 고려하다 보니 10년 이상 같은 집을 제청으로 삼게 되었다. 제물을 준비할 때에는 ‘공새미’ 물을 떠다가 쓴다. 물에 금줄을 치지는 않는다.

비멘이마을당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밤 9시에 지낸다. 유교식 마을제사는 대개 정월 상정일(上丁日) 자시(子時)에 지낸다. 이에 비추면 비멘이당제의 제일이나 행제 시간은 여느 마을의 유교식 마을제사와는 매우 다른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이 그다지 오랜 일이 아니다. 이 마을에서도 본래 다른 마을처럼 자시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편의를 좇아 이와 같이 바꾼 것이다.

준비 과정이나 행제 방식은 모두 흔히 말하는 유교식이다. 저녁 8시쯤 되면 마을 뒤쪽에 있는 제장으로 이동할 준비를 한다. 제청을 나서기 전에 미리 손을 씻는다. 제청 입구에 맨 금줄을 걷어내고 집사에게 [향로](/topic/향로)에 불을 담아 들게 하여 앞세운다. 매우 가까운 곳임에도 차를 타고 이동한다. 인원이 많지 않아 제물을 한 번에 옮기기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장에 도착하면 먼저 제단을 청소하고 제물을 진설한다. 안쪽 벽에 ‘본향지신 신위(本鄕之神 神位)’라고 쓴 지방을 붙인다. 제물은 할망․하르방 두 신위 앞에 따로 진설한다. 제기는 제청으로 정해진 집의 것을 이용한다. 닭은 털과 내장만 제거하고 올린다. 닭의 생간을 내어 함께 올린다. 생선도 날것을 올린다. 이처럼 제물을 날것으로 올리는 것은 유교식을 따른 것이다. 메에는 띠 줄기를 조금 잘라 꽂아 놓는다. 메를 신위에 하나씩 올리고 띠 줄기를 꽂는 것은 무속식을 따른 것이다. 진설이 끝나면 각자 [제복](/topic/제복)으로 갈아입는다. 제복은 [도포](/topic/도포)에 [유건](/topic/유건)이다. 제복은 평소 마을회관에 보관해 둔다.

특이하게도 홀기는 따로 없다. 그러나 행제의 순서는 일반적인 경우와 같다. 전폐례-초헌례-[독축](/topic/독축)-[아헌](/topic/아헌)례-[종헌](/topic/종헌)례-철변-분폐 순으로 진행한다. 먼저 대축이 배례를 하고 물러서면 3헌관이 배례를 하고 전폐례가 이어진다. 축문은 다른 마을 포제와 비슷한 형식과 내용으로 미리 써 둔 것을 대축이 독축한다. 축문의 첫머리에 제목처럼 적어 둔 것은 ‘본향제축(本鄕祭祝)’이다. 철변은 제물을 조금씩 떼어내 술잔에 모으는 것으로 대신한다. 철변을 한 뒤에는 3헌관, 전사관, 대축 순으로 배례하고 물러난다. 이어 분폐가 이루어진다. 축문을 사르고 제관 각자가 소지를 사르는 것이다. 제관이 저마다 소지를 사르는 것은 무속식을 따른 것이다. 이것이 끝나면 제물을 모두 걷어낸다. 한편 제장에서는 엄숙해야 한다. 대화를 하거나 소리를 내서는 일절 안 된다. 그릇소리도 내지 않는다.

행제를 마치면 다시 제청으로 돌아가 [음복](/topic/음복)을 한다. 음복은 제청에 모인 제관과 집사만 함께한다. 돼지를 희생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분육(分肉)은 하지 않는다. 다만 따로 사 둔 암탉 몇 마리를 삶아 제관들끼리 나누어 먹는다. 옛날에는 처음으로 제관이나 집사로 참여하는 사람에게 ‘[초행](/topic/초행)료’를 내라고 하여 술 한 되를 받아 나누어 마셨다.

한편 제관들이 제청에 들어가 행제를 마칠 때까지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따로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함께 논다. 이때에는 돼지고기도 꺼리지 않고 먹는다. 동네 남성들이 대부분 모인다. 이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마을제에 동참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여성의 참여는 매우 제한적이다.

제주도 여러 마을에서 무속식의 당굿과 유교식의 포제를 병행하는 사례를 볼 수 있으나 이 마을에서는 흔히 포제라고 하는 유교식 마을제를 따로 하지 않는다. 마을제사는 당제 하나뿐이다. 당굿이 그대로 당제로 바뀌어 유일한 마을제사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내용비멘이당제는 [마을](/topic/마을) 뒷동산 ‘당밧’ 지경에서 지낸다. 이곳에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흔히 ‘당제단’이라고 한다. 장방형으로 담을 높이 두르고 그 안에 역시 장방형의 제단을 두었다. 본래는 잡석을 대충 쌓아 제단으로 이용했으며 2003년에 지금의 제단을 마련하였다. 2,036㎡(617평)에 이르는 부지를 확보하고 진입로를 포장하였다.

제단 가까이에 이 마을 본향당인 비멘이할망당이 있다. 본래 이곳에서는 이 일대에서 이름난 심방을 불러 당굿을 크게 벌였다. 구전에 따르면 이 마을의 본향신은 송씨할망, 문씨영감이라고 한다. 송씨할망은 비멘이할망당에 좌정한 신이다. 문씨영감은 따로 좌정하여 당이 별도로 있었으나 오래전에 사라졌다. 문씨영감은 돼지고기를 먹은 부인이 부정하다 여겨 별거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굿을 할 때에는 ‘공새미’에서 준비하여 깃발을 여러 개 들고 풍물을 치면서 당으로 이동하였다. ‘본향듦’에서는 문씨영감을 당으로 불러 모셔야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할망․하르방 상봉시킨다’고 하였다. 그런데 워낙 하르방을 모시는 것이 힘들어 심방들이 자진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한 시간 넘게 산판을 놓아 보아도 하르방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점괘가 나오는 경우가 흔하였다. 그러면 주민들 가운데 부정한 사람이 있다고 하여 술을 흩뿌리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당굿은 하루 종일 이어[지게](/topic/지게) 마련이었다. 이와 같이 하니 이 마을 당굿이 구경거리로 부족함이 없었다. 사람들은 송당 다음으로 당굿의 규모가 컸다고 자랑한다. 인근의 봉성리, 납읍리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당굿을 구경하곤 하였다고 한다. 큰심방이 사라지자 당굿은 지속되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당굿을 대신하여 당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요즘에는 일 년에 한 번 당에 가서 기원한다. 가족이 아프면 두 차례 찾기도 한다. 당에 갈 때에는 돼지고기 제수를 조금씩 따로 놓아 두었다가 [가지](/topic/가지)고 가서 바친다.

당제를 지내기에 앞서 마을총회를 열어 [제관](/topic/제관) 선정을 비롯한 제반사항을 의논한다. 마을총회는 대개 제일을 닷새쯤 앞두고 연다. 미리 마을 어른들과 의논하여 가려 둔 제관 후보자를 총회에서 공개하여 허가를 얻는다. 대개 대축을 먼저 선정하고 나머지 제관은 어른들과 의논하여 결정하는 방식을 취한다. 제관은 모두 다섯 명으로 구성된다. [헌관](/topic/헌관) 세 명, 집사 한 명, 전사관 한 명이다. [초헌](/topic/초헌)관은 이장이 맡는다. 집사는 대축을 겸한다. 전사관은 제물 구입과 준비를 전담한다. 제관은 장가든 사람 가운데 특히 복 좋은 이로 선정한다. 제관이 선정되면 제관들이 정성을 들일 제청을 정한다. 제청은 개인 집 가운데 비교적 깨끗한 곳을 고른다. 오후 4시쯤 미리 작성해 둔 원고를 토대로 하여 [축문](/topic/축문)을 쓴다. 제관들에게는 약간의 수고료를 지급한다. 과거와 달리 여러 가지 이유로 제관을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데 따른 조치이다.

제일을 앞두고 마을 입구, 제청 입구, 제장 입구에 [금줄](/topic/금줄)을 친다. 마을 입구에는 금줄을 높이 친다. 제관들은 제일 아침부터 행제할 때까지 제청에서 근신한다. 본래 일주일 근신하던 것이 사흘로 줄었다가 다시 하루로 바뀐 것이다. 지금도 앞선 이틀 정도는 집에서 정성을 들이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인적이 드문 아침 일찍 제청에 모인다. 아침 일찍 회의하여 제반 사항을 의논한다. 이를 ‘기돗제회의’라고 한다. 제청에 있는 동안 특별히 음식을 금기하지는 않는다. 돼지고기를 금기해야 한다는 것도 없다.

제비는 마을 공금으로 마련한다. 과거에는 가구별로 돈을 걷어 제비를 마련하였으나 지금은 공금이 충분하여 제비를 따로 걷지 않는다. 마을 경내에 소재한 유력 기관으로부터 상당액을 기부받고 있어 마을 공금이 풍족하다.

제물은 닭, 메, [시루떡](/topic/시루떡), 돌레떡, 과일([대추](/topic/대추), 밤, 귤 등), 채소([미나리](/topic/미나리)), 생선, 소주 등이다. 희생(犧牲)으로는 수탉을 쓴다. 하르방신인 문씨영감이 돼지고기를 금기하기 때문이다. 이 닭을 ‘대제물(大祭物)’이라고 한다. 닭은 두 마리, 메도 두 그릇 준비한다. 이것은 할망․하르방 2위에 따로 올리기 위함이다. 다른 제물도 할망․하르방 2위에 올릴 수 있게 준비한다. 닭, 메, 시루떡, 돌레떡 등은 당굿을 할 때 흔히 쓰이는 제물이다. 이들 제물은 모두 제청으로 정해진 사가(私家)에서 준비한다. 그 집의 주부가 제관들의 식사와 제물 차림을 도맡는다. 당제에 참여가 허용되는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 결국 제청을 정함에 있어 그 집에 제물을 준비할 만한 능력이 있는 이가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여건을 고려하다 보니 10년 이상 같은 집을 제청으로 삼게 되었다. 제물을 준비할 때에는 ‘공새미’ 물을 떠다가 쓴다. 물에 금줄을 치지는 않는다.

비멘이마을당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밤 9시에 지낸다. 유교식 마을제사는 대개 정월 상정일(上丁日) 자시(子時)에 지낸다. 이에 비추면 비멘이당제의 제일이나 행제 시간은 여느 마을의 유교식 마을제사와는 매우 다른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이 그다지 오랜 일이 아니다. 이 마을에서도 본래 다른 마을처럼 자시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편의를 좇아 이와 같이 바꾼 것이다.

준비 과정이나 행제 방식은 모두 흔히 말하는 유교식이다. 저녁 8시쯤 되면 마을 뒤쪽에 있는 제장으로 이동할 준비를 한다. 제청을 나서기 전에 미리 손을 씻는다. 제청 입구에 맨 금줄을 걷어내고 집사에게 [향로](/topic/향로)에 불을 담아 들게 하여 앞세운다. 매우 가까운 곳임에도 차를 타고 이동한다. 인원이 많지 않아 제물을 한 번에 옮기기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장에 도착하면 먼저 제단을 청소하고 제물을 진설한다. 안쪽 벽에 ‘본향지신 신위(本鄕之神 神位)’라고 쓴 지방을 붙인다. 제물은 할망․하르방 두 신위 앞에 따로 진설한다. 제기는 제청으로 정해진 집의 것을 이용한다. 닭은 털과 내장만 제거하고 올린다. 닭의 생간을 내어 함께 올린다. 생선도 날것을 올린다. 이처럼 제물을 날것으로 올리는 것은 유교식을 따른 것이다. 메에는 띠 줄기를 조금 잘라 꽂아 놓는다. 메를 신위에 하나씩 올리고 띠 줄기를 꽂는 것은 무속식을 따른 것이다. 진설이 끝나면 각자 [제복](/topic/제복)으로 갈아입는다. 제복은 [도포](/topic/도포)에 [유건](/topic/유건)이다. 제복은 평소 마을회관에 보관해 둔다.

특이하게도 홀기는 따로 없다. 그러나 행제의 순서는 일반적인 경우와 같다. 전폐례-초헌례-[독축](/topic/독축)-[아헌](/topic/아헌)례-[종헌](/topic/종헌)례-철변-분폐 순으로 진행한다. 먼저 대축이 배례를 하고 물러서면 3헌관이 배례를 하고 전폐례가 이어진다. 축문은 다른 마을 포제와 비슷한 형식과 내용으로 미리 써 둔 것을 대축이 독축한다. 축문의 첫머리에 제목처럼 적어 둔 것은 ‘본향제축(本鄕祭祝)’이다. 철변은 제물을 조금씩 떼어내 술잔에 모으는 것으로 대신한다. 철변을 한 뒤에는 3헌관, 전사관, 대축 순으로 배례하고 물러난다. 이어 분폐가 이루어진다. 축문을 사르고 제관 각자가 소지를 사르는 것이다. 제관이 저마다 소지를 사르는 것은 무속식을 따른 것이다. 이것이 끝나면 제물을 모두 걷어낸다. 한편 제장에서는 엄숙해야 한다. 대화를 하거나 소리를 내서는 일절 안 된다. 그릇소리도 내지 않는다.

행제를 마치면 다시 제청으로 돌아가 [음복](/topic/음복)을 한다. 음복은 제청에 모인 제관과 집사만 함께한다. 돼지를 희생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분육(分肉)은 하지 않는다. 다만 따로 사 둔 암탉 몇 마리를 삶아 제관들끼리 나누어 먹는다. 옛날에는 처음으로 제관이나 집사로 참여하는 사람에게 ‘[초행](/topic/초행)료’를 내라고 하여 술 한 되를 받아 나누어 마셨다.

한편 제관들이 제청에 들어가 행제를 마칠 때까지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따로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함께 논다. 이때에는 돼지고기도 꺼리지 않고 먹는다. 동네 남성들이 대부분 모인다. 이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마을제에 동참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여성의 참여는 매우 제한적이다.

제주도 여러 마을에서 무속식의 당굿과 유교식의 포제를 병행하는 사례를 볼 수 있으나 이 마을에서는 흔히 포제라고 하는 유교식 마을제를 따로 하지 않는다. 마을제사는 당제 하나뿐이다. 당굿이 그대로 당제로 바뀌어 유일한 마을제사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어음1리 당제의 역사는 당굿 형태로 오랜 역사를 거쳐 온 것이다. 지금의 당제는 본래 당굿으로 크게 벌이던 제의를 유교식으로 간소화한 것이다. 이 [마을](/topic/마을)에서는 큰심방을 불러 당굿을 성대하게 벌이던 오랜 전통이 있었다. 이때 제비는 제일 하루 전날까지 집집마다 돌면서 곡식을 거두어 마련하였다. 이 당시에는 어음1리와 2리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였다고 한다. 1947년쯤까지 이와 같이 당굿을 크게 하는 전통이 이어졌다. 4・3사건 당시에는 마을이 소개되는 바람에 당굿은 물론 어떠한 형태의 제의도 지내지 못하였다. 메인심방도 난리통에 죽었다. 이 때문에 당굿의 명맥을 잇지 못하게 되었다. 당굿이 사라[지게](/topic/지게) 되자 대신 어음1리 비멘이마을 남성들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제관](/topic/제관)을 선정하고 유교식 제의를 벌이게 된 것이다. 비록 마을 남성들이 유교식 제법으로 제의를 지내지만 여러 [가지](/topic/가지) 무속식 제의의 전통은 그대로 계승하였다.
역사어음1리 당제의 역사는 당굿 형태로 오랜 역사를 거쳐 온 것이다. 지금의 당제는 본래 당굿으로 크게 벌이던 제의를 유교식으로 간소화한 것이다. 이 [마을](/topic/마을)에서는 큰심방을 불러 당굿을 성대하게 벌이던 오랜 전통이 있었다. 이때 제비는 제일 하루 전날까지 집집마다 돌면서 곡식을 거두어 마련하였다. 이 당시에는 어음1리와 2리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였다고 한다. 1947년쯤까지 이와 같이 당굿을 크게 하는 전통이 이어졌다. 4・3사건 당시에는 마을이 소개되는 바람에 당굿은 물론 어떠한 형태의 제의도 지내지 못하였다. 메인심방도 난리통에 죽었다. 이 때문에 당굿의 명맥을 잇지 못하게 되었다. 당굿이 사라[지게](/topic/지게) 되자 대신 어음1리 비멘이마을 남성들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제관](/topic/제관)을 선정하고 유교식 제의를 벌이게 된 것이다. 비록 마을 남성들이 유교식 제법으로 제의를 지내지만 여러 [가지](/topic/가지) 무속식 제의의 전통은 그대로 계승하였다.
형태무속신인 본향신을 대상으로 하여 무속식 [제물](/topic/제물)을 올려 유교식 제법으로 의례를 행하니 무속식과 유교식이 절충된 의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기능당제는 [마을](/topic/마을)의 안녕과 [생업](/topic/생업)의 풍요를 기원하고 마을 사람들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형태무속신인 본향신을 대상으로 하여 무속식 [제물](/topic/제물)을 올려 유교식 제법으로 의례를 행하니 무속식과 유교식이 절충된 의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기능당제는 [마을](/topic/마을)의 안녕과 [생업](/topic/생업)의 풍요를 기원하고 마을 사람들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의의[당굿](/topic/당굿)이 유교식 의례로 변화되는 양상을 잘 보여 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참고문헌한국의 [마을](/topic/마을)신앙 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의의[당굿](/topic/당굿)이 유교식 의례로 변화되는 양상을 잘 보여 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참고문헌한국의 [마을](/topic/마을)신앙 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국립민속박물관한국의 무속-서울ㆍ황해도편양종승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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